옛날에는 한강 노들나루 근처 언덕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던 명소였다.
세월이 흘러 그 언덕은 헐리고 절경을 뽐내던 강가 그 명소는 육중한 아파트군(群)에 자리를 내주었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한강이 보이고 강 북녘에도 거대한 아파트가 버티고 시야를 가리고 있다.
청산 자부송(自負松)아 네 어이 누엇난다/
광풍을 못 이긔여 불희져저 누엇노라/
가다가 양공(良工)을 만나거든 날 옛다라 하고려/
조선 숙종 때 명신 박태보(朴泰輔)가 남긴 시(詩)이다.
옛 스타일의 그의 시를 현대문으로 바꾸어 보았다.
푸른 산 속에서 비뚜름하게 누워 있는 소나무야/
 어는 어찌해서 그렇게 누워 있느냐?/
사나운 바람을 못 이기어 뿌리가 뒤로 기울어져 누워 있다./
그러니 가다가 솜씨가 좋은 목수를 만나거든 내가 여기에 있다고 하여라!/

 1695년(숙종 2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숙종 15년의 민비 인헌왕후 폐출 때
죽음으로써 이를 충간(忠諫)하였던 박태보(朴泰輔)다.
그를 기리기 위해 노들나루 근처 한강가 지금의 유원아파트 103동 앞에
노강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자리에는 노강서원자리였음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1697년에 조윤벽(趙潤璧) 등의 청액소(請額疏)로 ‘노강(鷺江)’이라 사액되었다.
1754년에 중건되었다.
노는 해오라기 노(鷺) 강은 큰내 강(江)으로
그가 세상을 뜬 노량진의 지명에서 서원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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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큰 홍수로 한강 물이 넘치는 바람에 노강서원이 물에 떠내려갔다.
그 뒤 6ㆍ25동란 때 소실된 것을 1968년 수락산 자락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1977년에 경기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전하께서는 마음대로 행하시나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할 줄을 왜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신은 이미 나라에 몸을 바쳤으니,
상소로 임금의 허물을 간하는 것은 신하의 마땅한 분수와 의리입니다."
강직하기로 이름난 박태보(朴泰輔)는  인현왕후를 궁궐에서 내보낼 때
그 옳지 않음을 상소하여 왕의 노여움을 산다.
그는 원래 타고난 성품이 대쪽같이 꼿꼿하였다.
그래서 결코 누구에든지 아첨하는 법이 없었다.
이런 성격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시기와 참소가 끊이지 않았다.
왕의 신임은 두터웠다.
숙종에게는 늦도록 세자가 없었다.
임금의 마음이 초조하던 차에 소의 장씨(禧嬪張氏)가 왕자를 낳았다.
너무나 기다리던 왕자라서 숙종은 말없이 기뻐했다.
숙종은 곧 왕자를 책봉하고 장씨를 희빈(禧嬪)으로 올려 주려고 했다.
 "아직 왕후마마가 젊으시온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옵소서.
세자 책봉은 너무 이른 줄 아뢰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옵소서."
박태보가 반대하고 나섰다.
"허, 거 참! " 숙종은 이마를 찌프렸다.
임금으로서는 세자 책봉이 단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왕자를 낳은 장씨와 그 일가붙이들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설쳐 대기 시작했다.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된 장씨 역시 하루가 다르게 방자해져 갔다.
장씨의 어머니는 가마를 타고 궁궐을 드나들고
미관말직에 있던 천한 직책의 친척들까지 모두 중요한 벼슬자리에 임명되었다.
뜻 있는 대신들은 모이면 걱정부터 하곤 했다.
“정말 위태로워서 못 보겠소이다. 꼭 무슨 일이 나고야 말 것 같아서 말이요.”
“중요한 직책은 모두 장씨 일가붙이니 나라 꼴이 어찌되려고 이 지경으로 되어 가는지......”
“목숨을 걸고 임금께 아뢰어 봅시다.”
“안되오 목숨이 열 개라도 살아남지 못하오. 조금만 더 두고 기회를 봅시다.”
숙종 임금은 여러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장씨소생을 왕세자로 삼았다.
그때 반대한 많은 신하들은 모두 다 멀리 귀양을 보내졌다.
장희빈은 눈엣가시 같은 인현왕후
민비를 쫓아 내기 위해 임금에게 갖은 거짓말을 꾸며 댔다.
거짓말에 넘어간 숙종은 민비를 궁궐에서 쫓아내려고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왕비 민씨는 본래 투기심이 많아 국모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였소.
그런데 이번에 장희빈의 몸에서 세자가 탄생하자
더욱 모질고 악독하게 두 모자를 괴롭히고 있소.
 그런 성품으로는 하루도 국모 노릇을 할 수 없으니 당장 폐출시키시오! ”
인현왕후 민씨는 억울하게 궁궐에서 쫓겨났다.
”폐비 민씨에게 일체의 음식과 생활비를 지급하지 말도록 하라!”
임금의 추상같은 명령 때문에 민씨는 겨우 친정의 도움으로 끼니를 이어갔다.
왕비 폐출 사건이 옳지 않다는 상소가 나라 안 곳곳에서 올라 오기 시작했다.
80 여명의 신하들은 앞을 다투어 상소를 올렸다.
”감히 짐이 하는 일에 이렇듯 들고 일어서다니!
용서할 수 없다. 모두 잡아 들여라. 내가 친국 하겠다. “
마침내 박태보 차례가 되었다.
”내가 너를 유난히 신임했거늘 정녕 네가 이 상소문을 썼느냐?”
”그렇습니다.”
“왜 썼느냐?”
박태보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임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어버이와 자식과의 관계와 같사옵니다.”
”물론 그렇다.” 숙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비가 죄 없는 어미를 내치려 하는데,
어느 자식이 두 눈을 뜨고 가만히 구경만하고 있겠습니까?”
숙종은 버럭 화를 냈다.
”그토록 짐이 잘못 했다면 짐을 임금의 자리에서 쫓아 내면 될게 아니냐?”
”임금을 모함하고 죄인을 두둔하다니?”
박태보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임금을 바라 보았습니다.
”요즈음 전하께서 후궁을 총애 하심이 너무 지나치시옵니다.
한두 사람의 말만 믿고 국모를 폐하려 하시니, 신하로서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숙종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무엄한 놈! 발칙스럽구나. 저놈을 몹시 쳐라!”
형리들은 박태보에게 매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곧 살이 찢겨 피가 흘렀다.
그래도 박태보는 바른말을 쉬지 않았다.
”네 잘못을 알겠느냐?”
거듭 숙종이 다그쳤으나, 박태보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정말 지독한 놈이구나? 어서 실토하지 못할까?”
”무엇을 실토하라 하십니까? 평범한 백성이라도 부부의 도리는 지극한 법인데
우리 국모가 어떤 분이시기에 상스러운 죄인으로 몰아 내치십니까?”
”저놈이 감히 나에게 충고를 하는구나.
저놈이 입을 열지 못하도록 불로 지질 형구와 무릎을 누를 형틀을 대령하렷다!”
갖은 형벌을 다 받으면서도 박태보는 할 말을 다 하였다.
”화형과 무릎을 누르는 압슬 형벌은 역적 죄인에게나 쓰는 형벌입니다.
전하, 신에게 무슨 역적 죄가 있길래 이다지 험하게 다스리십니까?”
”네 죄는 역적 죄 보다 더하다.
감히 임금을 능멸한 죄, 어찌 역적 죄로 다스리지 못할쏜가?”
박태보의 살 타는 연기와 냄새가 온 궁궐 안에 퍼져 갔다.
”누구랑 함께 상소문을 지었느냐?" "저 혼자 지었습니다.”
”이세화가 이미 같이 지었다고 실토했다.”
”아닙니다. 그는 저를 살리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숙종은 형리에게 분부했다.
“저놈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계속 문초하라!”
그리고 사람을 시켜 박태보의 상황을 살피게 했다.
”실토 했느냐?”
”아닙니다. 입이 붙어 버린 듯 달싹 도 안 합니다.”
”죽지는 않았더냐?”
”아직 실낱 같은 숨은 붙어 있습니다.”
숙종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태보 그 놈이 본디 대쪽 같은 놈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참혹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으니 참으로 지독 하구나.”
”계속 고문 할까요?” 대신의 물음에 숙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고문한다고 소신을 굽힐 놈이 아니다.”
”그럼 하옥 시켜 둘까요?”
”멀리 진도로 귀양을 보내라. 당장!”
진도로 귀양가는 길에 들린 노량진 친구집에서 옥독(獄毒)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품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