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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산 난지도의 천지개벽

2013. 7. 25. 09:31 Posted by 조영희

 


2002년 5월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월드컵 공원 개원식이 열렸다.
공원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한 고건 서울시장(왼쪽부터) 김대중 대통령
이희호 여사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부인인 난 아난 여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중앙포토]

난지도(蘭芝島).
원래는 난초와 지초, 잔디가 가득한 아름다운 섬이었다.
1978년 난지도는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를 묻는 장소가 됐다.
그리고 93년 매립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15년이 흐르며 거대한 쓰레기 산 2개가 만들어졌다. 악취가 대단했다.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은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서울로 들어와야 했다.
서울시민은 쓰레기와 악취, 파리가 많다며 난지도를 ‘삼다도(三多島)’라 불렀다.

 

97년 김영삼정부 마지막 국무총리 때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장 부지를 난지도가 있는 마포구 상암동으로 정했다. 월드컵 경기장과 공원 건설을 민선 서울시장으로서 내가 맡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다.
서울시는 버려졌던 쓰레기 매립장을 안정화시키는 것을 넘어서
환경생태공원으로 재탄생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
우선 썩은 쓰레기에서 나오는 침출수가 한강과 주변 토양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못하게 해야 했다. 난지도 산 둘레 6㎞를 따라 콘크리트와 철판으로 만든 차수벽을 둘러쳤다. 60만㎡가 넘는 쓰레기 산 위에는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폴리에틸렌 차단막을 깔았다.
침출수를 정화하는 처리장도 만들었다.
냄새의 주범인 메탄가스를 뽑아내는 것도 큰 일이었다.
메탄가스를 태워 에너지로 바꾸는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했다.
월드컵 경기장과 상암 신도시에서 쓸 냉난방 에너지를 여기에서 공급했다.
가파른 쓰레기 산비탈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일도 어려운 과제였다.
완만하게 경사를 다시 잡고 깨끗한 흙을 덮었다. 풀과 나무를 그 위에 심었다.
쓰레기더미에서 고철·종이·합성수지를 골라내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이 난지도 주변에 살았다.
이들을 이주시키고 그 주택을 철거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난지도 매립지 안정화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일대에서 악취가 났다.
월드컵 개막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큰일이었다.
코 감각이 유달리 발달한 전문가를 동원했다.
악취의 원인은 경기도 고양시 대파밭에서 비료로 쓰고 있는 닭똥으로 드러났다.
냄새 때문에 매립지 안정화 공사가 잘못 됐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냄새가 안 나는 유기질 비료를 시에서 공급했다. 다행히 악취가 모두 사라졌다.
2002년 5월 1일 불모의 땅이었던 난지도는 ‘월드컵 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시민에게 되돌아갔다.
‘평화의 공원’ ‘난지천 공원’ ‘하늘 공원’ ‘노을 공원’ ‘난지한강 공원’ 등
저마다 특징을 갖춘 다섯 개 공원으로 꾸며졌다.
맹꽁이, 촉새, 뻐꾸기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도 공원을 찾기 시작했다.

 

김승규(66·사진) 전 서울시 SH공사 사장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시 환경관리실장으로 일했다.
난지도 매립지를 월드컵 공원으로 바꾸는 작업을 현장에서 지휘했다.
- 어떻게 월드컵 공원 조성 사업을 시작했나.
 “2000년 2월 고건 서울시장이 나를 환경관리실장으로 발탁했다.
고 시장은 한·일 월드컵을 ‘환경 월드컵’으로 치러야 한다며
월드컵 공원 조성 사업을 맡겼다.
월드컵 개막 때까지는 완성해야 하는 대역사였다.”
- 어떤 것에 초점을 맞췄나.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을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
매립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원래 불에 태워
공중에 날려 없애버리기로 했었다. 하지만 대기오염 문제가 있었다.
메탄가스를 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20㎾급 풍력발전기 5개도 시범 설치했다.
2002년 5월 7일 ‘환경재생 국제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매립지 분야 세계적 석학 6명이 월드컵 공원을 방문했는데 극찬 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싹 씻겼다.”
- 대학로에 낙산공원을 만드는 일도 맡았는데.
“난지도처럼 낙산 시민아파트도 서울의 압축 성장이 낳은 부산물이었다.
2000년 시민아파트 30동을 철거하고 주민을 이주시켜 조성했다.
어렵게 심은 소나무가 말라 가길래 나무의 하단에 물주머니를 달아
물이 일정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 직원들의 아이디어였다. ”
조현숙 기자
=7월25일자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 고건의 공인 50년을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