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암진의 '투금(投金)' 형제 사랑이야기

전설 2013. 8. 25. 18:42 Posted by 조영희

 

경강은 광나루에서 시작하는 서울의 한강이다.
한강의 나루 가운데 마지막 나루 공암나루다.
그 나루터가 지금은 한강 강변고속도로 건설로 땅위에 올라서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이억년 이조년 형제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남쪽 지방에서
일을 보고 개성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암진에 도착하였다.
앞서 가던 동생 조년이 갑자기 허리를 구부리더니
땅 속에서 큰 황금 덩어리 두 개를 집어 들었다.
"형님, 우리가 길을 가다가 우연잖게 이러한 황금을 얻었으니
하나는 제가 갖고 하나는 형님이 갖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생 조년의 기특한 제안을 형 억년이 받아들였다.
이들 형제는 황금 두 덩어리를 서로 우애 좋게 나누어 갖었다.
이들 형제는 공암진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배가 강 가운데 이르렀을 때다.
동생 조년이 짐보따리에서 큰 황금덩어리를 꺼내 강에 던졌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형 억년이 동생 조년에게 물었다.
"아우야! 아까 우리가 나누어 가진 황금덩어리를 버린 것 아니냐?"
"예, 형님 맞습니다. 그 황금덩어리입니다."
"아니! 왜 그 황금덩어리를 강에 버렸느냐?"
"죄송합니다.형님! 평소 형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척이나 깊었습니다.
그 금덩어리를 나누고부터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형이 없었으면 두 덩어리가 내 것일 텐데하는 욕심과 함께 말입니다.
그게 두려워 황금을 그냥 물에 던진 것입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나도 그랬지."
형 억년이도 황금덩어리를 강에 던저버렸다.
이 소문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황금을 던져 버린 여울이라고 해서
공암나루를 투금탄(投金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황금을 던져 버린 물가라고 해서 김포(金浦)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만은/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시조 다정가(多情歌)다. 만인이 좋아하는 시조다.
'형제투금'의 사건의 주인공 동생 이조년은 이 시조를 지었다.
그는 고려 후기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 4대에 걸쳐 왕을 보필한 문신이다.
요즈음 글로 다정가를 바꾸어 보았다.
"하얀 배꽃 밝은 달빛, 은하수는 한밤인데
아직 남은 푸른 내 맘, 소쩍새가 어찌 알까
정 많음이 병이라서, 잠 못 들고 뒤척이네."
그의 형제들의 이름이 좀 특이하나 우애는 남달랐다.
맏형 이백년(李百年) 둘째 이천년(李千年) 셋째 이만년(李萬年),
넷째 이억년(李億年) 다섯째 이조년(李兆年) 이다.